누구세요?/요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의미를 찾아 - "나 오늘 식뢰 했다."

구토리 2020. 8. 26. 03:15

 


 

 

 

요즘 이상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끈질기게도 쏟아진 장맛비로 인한 홍수에 지역마다 피해가 크고, 그 피해가 복구 되기도 전에 이제는 태풍 바비가 온단다. (제발 무사히 비켜가길)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날들이 오랜 시간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분위기도 점점 가라앉고 있다. 무기력한 느낌이랄까. 긍정적으로 지내기 위해서 노력 중이지만.. 솔직히 쉽지 않다..

 

 

 

 

코로나19가 터진 3-4월 즈음 한창 진행 중이던 연습은 페이를 받지 못한 채 멈춰야 했고, 공연은 취소되거나 기약 없이 밀렸다. 그때 정말 무기력해졌던 것 같다. 의욕 상실이랄까? 처음 겪는 일에 적잖이 놀라기도 했고 대처할 방법 또한 알지 못했다. 어쩌면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시간들이 몇 개월째에 접어들고, 우리나라가 대처를 잘하는 국가로 손꼽힐 무렵, 다시 사람들은 무뎌지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어떻게 보면 살기 위해 빠르게 적응 한걸 지도 모른다.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지원금을 받기 위해 열심히 서류를 떼어 신청하고, 또 다른 지원이 있는지 알아보고, 서로들 접수 시기를 놓치지 않게 도와주고, 격려해주며 으쌰으쌰 지낸 것 같다. 그렇게 조금씩 달라진 일상에 적응해가며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고 지냈는데..

 

 

 

 

다시 충격적인 발표가 이어진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종교 집회로 인한 서울 집단 감염이 확산되었다. 그나마 재개했던 모든 공연이 취소되었다. 이젠 공연이 취소된 것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가 불투명해졌는데, 이것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 말이 현 상황을 대변해준다고 생각한다. 3,4월에 느꼈던 그 무기력함과 다르다. 지금은 실로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두렵다.

 

 

 

 

그래도 8월 초까지는 카페에서 잠깐씩 마스크를 벗고 커피를 마실 수 있었고,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만큼은 조심스럽긴 하지만 마스크를 벗고 식사할 수 있었다. 숨이 막힐 땐 공원에서라도 잠시 숨은 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집 밖으로 외출하는 것 자체가 매우 두렵고 꺼려진다.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연습을 하고 호흡을 맞춰야 한다. 동선에 맞춰 움직이다 보면 마스크를 쓰고 있다 해도 마스크 틈으로 비말이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 순간순간이 매우 두렵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중 한 명이라도 걸리면 모두 끝장이야. 진짜 조심하자."라는 말을 꽤나 자주 한다. 사실 모두가 두렵다. 혹여라도 팀의 사기를 저하시킬까 우려돼, 최대한 두려움을 누르고 서로를 위해 있는 힘을 쥐어 짤 뿐이다. 마무리는 늘 "그래도 이 시국에 연습할 수 있음에 (일이 있음에) 감사하자"며 갖은 긍정을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연습가는 길

 

 

 

 

 


 

 

 

 

 

 

최근, 감사하게도 한예종에서 진행하는 쇼케이스 공연에 참여하게 되어, 얼마 전 첫 리딩에 다녀왔다. 리딩 전에 미리 식사를 하고 카페에 가서 대본을 볼 참이였다. 때마침 나처럼 미리 온 친구가 있어 함께 식사를 했다. 우리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마스크를 벗고 최대한 대화를 아끼며 음식을 씹었다.

 

 

 

 

 

 

 

콩나물. 콩 자반. 쭈꾸미 삼겹살. 김치. 김..

 

 

 

 

 

 

 

 

 

"어? 아니.. 우리 말야."

 

 

 

 

 

 

 

"응?"

 

 

 

 

 

 

 

 

 

 

문득 난, 우리의 신뢰도에 대해 상당히 놀랐다. 지금 함께 식사를 한다는 건.. 한 배를 탄 것과 다름없다. 상대가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거나, 혹은 그가 확진자이거나, 2차 3차의 감염 우려가 있다거나 등등의 걱정거리가 태산인 이 시국에 함께 식사를 하다니. 지금 이 시대에 대면하는 식사란, 이 모든 경우의 수를 제쳐두고 '너를 믿는다' 혹은 너와 함께라면 '그 무엇도 괜찮다'라고 표현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그 날.. (그동안 우리도 알지 못했던) 그와 나 사이의 신뢰가 상당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식사라는 것이 기존에 내가 알던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 이제 식사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신뢰를 의미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 외에도 앞으로 많은 것들이 내가 알고 있는 의미를 넘어 새로운 의미를 내포하여 재탄생할 것이다. 정말 포스트 코로나19 시대가 다가옴을 느낀 순간이었다.

 

 

 

 

 

 

 

 

 

 

 

나 오늘 식뢰 했다..

 

 

 

 

 

 

그러나 3단계로 격상하면, 이마저도 사라지겠지? 제발 식뢰 마저 유지할 수 없게 되는 세상이 오지 않길 바라며. 최대한의 접촉은 줄이고.. 할 수 있는 한.... 영상통화로 식사 합시다........(하)

 

 

 

 

 

 

잠깐이지만, 마스크를 벗고 어색하게 웃었다!